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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옳은 의견의 허점,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후기/책 2020. 1. 16. 09:59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우치다 타츠루, 서커스출판상회, 2019)

     

    워낙 저자의 주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책이라, 별도의 감상 정리는 없이 인상적인 부분을 인용해 정리만 해 보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말 자체가 발화자 입장에서 수미일관하며 논리적으로 엄정한 것'보다 '그 말이 듣는 이에게 가닿아서 거기서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옳은 의견만 말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을 정도로 옳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말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경우 할 수 있는 말은 "모두가 행복하게 살면 좋겠네"라든지 "세계가 평화로우면 좋겠네"라는 식의 무난한 의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되는가? 어떻게 하면 '세계가 평화로워'지는가?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옳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우물쭈물한다.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그즉시 다른 의견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옳은 것'을 고집하는 사람은 이를 꺼린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구체적인 제언을 해야 하며, 구테적인 제언을 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다른 의견과 대안을 내기 때문이다.
      '옳음'은 전면적인 부정에 의해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언에는 즉시 다른 의견이나 대안이 나온다.그러면 그 주장의 '옳음'은 구체적이었던 만큼 손상된다. 따라서 옳은 말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대체 누가, 어떤 자격으로,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지도 불문명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구체성이 결여되어 누구를 향해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옳은 의견'으로 가득하다. 신문 사설부터 뉴스 해설, 대신이나 관료의 국회 답변, 텔레비전 인생 상담까지 그런 의견투성이다.
      우리의 '동포'인 '타자' 중에는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 내 이익을 해치는 사람, 나의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동포'에는 나와 정치적 의견이 같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나'의 자기중심성을 심문하고 나를 윤리적으로 드높이며 나의 커뮤니케이션 감도를 개선해주는 교화적인 타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동포에는 우리에게 그 어떤 '좋은 것'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사건건 우리의 생활을 방해하는 '불쾌한 이웃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불쾌한 이웃들'과 공생하고 그 이익을 배려하며 그 권리를 옹호하는 것, 그것이 '시민'의 조건이라고 오르테가는 말한다.

     

    보수파든 다민족 공생파든 '옳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불쾌한 이웃'을 셈에 넣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양쪽 다 '정의의 집행'을 본질적으로 '쾌적한 것'으로서 구상한다.
    (...) 한쪽 사람들에게는 모든 국민이 일장기를 휘두르고 <기미가요>를 절창하며 니주바시에서 절을 하는 사회가 '옳음'의 이상향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온갖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차이를 뛰어넘어 단 하나의 '정치적 올바름' 속에서 모든 구성원이 편히 쉬는 사회가 '옳음'의 이상향이다.
      둘 다 '옳음'이 성취되면 '매우 쾌적한 사회'가 오리라 행각한다.

     

      하지만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대체 어떤 근거가 있기에 '옳음'의 실천은 그 자체로 '쾌적'하며, '옳은 일'을 성취하면 '쾌적한 사회가 실현된다' 고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오르테가가 넌지시 하는 말은 '시민으로서 옳은 행동'이란 대부분의 경우 '불쾌함'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이다. 법규를 지키고 미풍양속을 따르며 사리의 추구를 자제하고 욕망의 실현을 억제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옳은 행동'이다. 그리고 그 '인내'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약한 적'과의 공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유쾌한 경험일 리 없다.

     

    - '엄청나게 긴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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